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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부둣가

 
전 숙 희  

  내 어린시절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중에도 함경도의 추위는 사나운 짐승모양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바람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내고향 원산항은 이런 대륙적인 추위속에서도 고기비린내 나는 부둣가의 야릇한 정서를 풍기고 있었다. 하늘도 땅도 부둣가도 온통 하얀눈 속에 파묻힌 입춘대길이 지나고 음력 명절이 지나가고 새하얀 은세계 속에 휘영청 밝은 대보름을 지내고 나면 제아무리 위세를 떨치는 눈보라와 세찬 바람도 차츰 가라앉고 해죽 웃는 듯한 봄의 입김이 그 사나운 바람결 사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때가 되면 겨우 내 방 속에 혹은 집속에서만 웅크리고 지질렸던 기운이 새 움이 얼음을 뚫고 올라오듯 뻗쳐올라 방구석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는가보다. 속옷도 없이 무명옷에 색동물을 들인 혹은 새빨간 명주댕기를 들이기도 한 북녘 고향의 아이들은 어둡고 스산한 방문을 차고나와 거리로 부둣가로 쏟아져 뛰노는 것이었다. 사내아이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얼음판 위에서 팽이치기 연날리기를 하고 계집아이들은 어디선가 뜯어온 새파란 각시풀을 엮어 담배 물부리에 꽂아 새각시를 만들기도 하고 널뛰기, 땅맨기놀음 등으로 언 두 뺨이 능금처럼 익기도 했다. 우리 전씨 문중은 일가가 몹시 번창한 집안이었다. 당시 조정의 벼슬아치로 살림도 부유했던 조부님의 네 아들과 두딸의 손은 원산을 중심으로 안변 협곡외 금강, 함흥 등지로 퍼져있어 오나가나 노인과 아이들이 북적거린집안이었다.

  이렇게 번성한 집안에서 자랐건만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명절이나 무슨 잔칫날이 되여 식구들이 모여들게 되면 나는 그 속에 휩쓸리기 싫어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했다. 그리고선 혼자 양지쪽 담모퉁이에 기대서 어린애를 등에 지고 볼그레 빛이 바랜 나무함지박에 꽁꽁 언 동태나 가자미를 한 한박씩 이고 장거리로 가는 아낙네들과 지게에 곡식을 지고 가는 남정네들의 구부정한 모습을 바라다보며 공연히어른들은 측은하다는 생각에 어렴풋이 잠기곤 했었다.

  때로는 사촌아이들과 어울려 우리 집안의 큰 고깃배가 드나드는 부둣가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기다란 바지랑대를 가로세로 엮어 놓은 듯한 부둣가에는 거대한 어망들이 널려있고 동태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내 고향 원산항의 고기맛은 각별한 것이었다. 펄펄 뛰는 팔뚝만한 고등어, 가자미, 동태들은 그 생생한 것을 쭉 쪼개서 소금을 뿌려 구어 먹는 맛, 달고도 싱싱한 그 신선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항구의 인심은 무척이나 소탈하고도 너그러웠던 것 같다. 고깃배가 닿을 때쯤 소쿠리를 들고 모여들면 어부들은 생명을 내걸고 잡아올린 고기들이건만 아낌없이 한 바가지씩 푹푹 퍼주곤 했다. 아낙네들의 인심 또한 그러했다. 조개철이 되면 해변가의 온갖 조개들과 털게를 함지박에 김이 무럭무럭나게 삶아 이고 말만 잘하면 한 두마리씩 공짜로 집어 주는 것은 예사였다. 워낙 해변가 사람들의 기질이란 헤픈데가 많지만 이 항구의 아낙네들은 더욱 그러한 기질이 농후했던 것 같다.

  손톱, 발톱이 얼도록 극성스럽게 일해 벌어가지고는 또 기분 내키는 대로 남 주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려서 떠난 고향의 모든 기억이 희미하지만 각별하던 그 고향 아주머니들의 기질과 다시 맛볼 수 없는 생선맛 만은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고 있다. 내 어린 시절의 고향집의 추억은 또 주룩주룩 낙숫물 떨어지는 그리운 그 처마밑 고드름에도 달려있다. 봄의 훈훈한 입김이 항구에 퍼지게 되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처마밑의 고드름이 먼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 고드름을 따서 얼음사탕모양 빨며 조그만 입들이 얼어붙는다. 부둣가의 바지랑대에는 겨우내 더 길고 볼품 있는 고드름이 수없이 달려 있다. 이것을 보기좋게 부쩍부쩍 꺾어들고 입으로 녹여 내던 일, 사뭇 장하고 신나는 장난이었다. 시골항구의 아이들은 엿이나 알사탕 이외에는 단맛을 모르고 자라났다. 방치만한 고드름이 마치 단꿀 같은 얼음 사탕이기나 한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빨고 핥으며 신이났던 것이다. 처마밑 고드름에서 녹아내리는 봄물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언제 다시 가볼지 알 수 없는 내 고향 원산항구의 비릿한 바다냄새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또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 어린날의 <봄>을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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