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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密語깔린 明沙十里

 

         

한 일 영(前 원산시 명예시장, 시민회 고문) 

  명사십리의 고운 모래밭과 송도원의 푸른 소나무로 유명한 관동(關東) 제일의 도시인 원산은 본래원산진(元山津)이라고 불리던 작은 어촌(漁村)이었다. 지리적으로 볼 때 강원도의 북쪽과 함남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서울이나 평양으로 통하는 요충지다.

  옛날부터 관북(關北) 지방의 기근에 대비해서 상평창(常平倉)을 두어 쌀과 갖가지 곡식을 저장해왔다. 1880년 부산에 이어서 개항되면서 무역 항구로 발전했고 1918년 경원선, 1928년 함경선(咸鏡線), 1941년 평원선(平元線), 동해북부선들이 차례로 깔리자 원산은 항구로서 뿐만 아니라 전국 제일의 레저타운으로 발돋음 했다.

  일제때 원산에서는 모보, 모걸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다.

  해당화 곱게피는 아름다운 백사장을 배경으로 푸른 소나무 숲사이를 거니는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은 해당화꽃 보다도 더 붉고 아름다왔다.

  원산중학에 다닐때 우리는 멋진 한쌍의 로맨스신을 보고 모던보이를 모보, 모던 걸을 모걸이라고 불렀다. 서울이나 동경 등지에서 여름엔 수영을, 겨울엔 스키를 지치러 오는 젊은 연인들로 해서 원산은 더 밝고 환한 것 같았다.

  원산 외항(外港)에 면해있는 명사십리의 끝간데 없이 펼쳔진 곱디고운 모래밭이나 푸른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도원, 시가지 뒤켠에 버티고 선 장덕산(長德山)의 우람한 형세는 꼭 부산을 닮았다.

  이런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보다는 원산의 멋은 아무래도 이속을 거닐고 노닐던 이들로부터 우러나온것 같다.

  적전천(赤田川)에 걸쳐있는 대홍교(大虹橋)를 중심으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인촌(韓國人村)은 수양버들, 진달래, 개나리로 온통 꽃밭속에 파묻힌다. 레저붐을 타고 매년 여름철만 되면 동해안(東海岸)의 각 해수욕장이 붐비고 무척 요란스럽지만 40년 전의 원산 해수욕장만은 못하다.

  송도원 푸른 소나무 숲 사이에 자리잡은 별장 18홀을 가진 골프장, 테니스코트에다 방갈로 식당등 없는 시설이 없었다.

  동해를 바로 앞에 바라보는 명사십리의 야트막한 소나무 숲속에 파묻혀 있는 발갛고 파란 색깔의 선교사 별장은 티없이 밝고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였다.

  특히 송도원 해수욕장의 짙은 소나무 숲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뜨거운 열기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비늘없는 가자미만 먹어서 자주성이 없다고들 하지만 인심이 후하기로 원산 사람을 따를만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안변평야에서 나는 무진장한 곡식에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산물, 욕심을 채울줄 모르는 순박함으로 원산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할 줄 몰랐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은 쉽게 통화되고 또 제 마음껏 개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한 원인인 것 같다.

  아직도 두고온 고향의 하늘과 땅이 모두다 생생하며 원산은 우리의 분신(分身)이다.

  어쩌다 볼일로 대전(大田)에 갈때면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원산을 그린다.

  서울서 대전까지의 거리나 시간은 고향인 원산까지 달려가는 시간과 맞먹기 때문이다.

  속초에는 원산 사람이 2천3백여명이나 살고 있다. 개중에는 서울등지의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살만한 여유있는 사람도 있고 속초를 떠나면 더 많은 돈벌이를 할수 있는 사람도 많지만 속초를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있다. 그것은 고향땅이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통일되는 그날엔 맨 먼저 달려가 곺은 망향(望鄕)의 꿈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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