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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평리, 향우회의 결성에 즘하여

 
김 근형(용평리) 

그 옛날 중국의 문호 소 동파가 "원생 고려국 일견 금강한"이라 말했듯이 기암절벽과 삼라만상의 기기묘함이 신비스러움은 물론, 그 경관이 너무나도 웅장하고 아름다워 세계적인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의 관문이요, 울창한 삼림속에 엄숙한 웅좌를 자랑하는 석왕사를 가까이 두고 있고, 우리나라 삼대곡창의 하나인 안변평야의 안변사과의 그윽한 향기를 만끽하기도 하고 영흥만을 포근이 감싸 줘 원산을 천연의 대 항구로 이루게 해 준 갈마반도, 이에 연해 있는 명사십리 백사장 그리고 해당화의 조화로움과, 송도원의 해수욕장도 동양 제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인심이 후덕하여 타 지방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원산!

바로 이 원산의 한 모퉁이에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시냇물 잔잔히 흐르며 산천의 수려함이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곳.......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몸 성히 다녀오라" 하시던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고 삼일 만이면 돌아온다며, 부모형제, 처자식마저 저버리고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일세라 낯선 땅 이남으로 자유를 찾아 홀연히 떠나와 50년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사랑하던 고향을 몽땅 옮겨놓지 못한 아쉬움이 한이 되어 망향의 서러움에 울부짖고 있는 용평리 향우회 1세들이 태어나 마음껏 웅지를 펴가면 지내왔던 그 고향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서 5백리길! 고속도로가 있어 자동차로 달린다면 2시간의 거리다.

서울의 본역에서 경원선의 완행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면 먼저 청량리역을 지나 의정부 - 동두천 - 전곡 - 연천 - 철원 - 월정리 - 평강 - 복계 - 검블랑 - 삼방협 - 삼방 - 동가리 - 신고산 - 용지원 - 석왕사 - 남산 - 안변 - 배화 - 갈마 -원산역으로 이어진다.

2Km 남짓 가다보면 넓은 들판에 울창한 나무로 몇겹이 방풍림과 수호림으로 싸여져 외부에서는 마을안이 잘 들여다 보이질 않으나 이곳만 지나면 행정구역상으로 함경남도 원산시 용평이(일명:길명)이며, 인구 약 2,000명 가옥수 250여호나 되는 비교적 농촌치고는 크고 아늑하며 처음보는 이도 언듯 부촌임을 인식케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나온다.

마을 동편으로는 미리미 산으로부터 청용끝에 이르기까지 제일 높은 미리미봉이 해발 100m 정도이며 낮은 곳은 해발 20~30m밖에 되지않는 12봉 산으로 약 8Km정도 이어져 30여호 되는 성라리를 품 깊숙이 안고 우리의 고향 용평리는 약 300m쯤 떨어져 놓은채 병풍처럼 펼쳐져 갈마 반도에서 두남리 명사십리 성북리 남성으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막아주고 온갖 해풍에도 끄덕도 하지않는 해송을 온 몸에 빽빽이 세워놓고는 사시사철 그 푸른 기상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12봉 산의 끝 격인 청용 끝에는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용두 바위라 이름 붙여진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머리 부분이 샛강물에 연해 있어 여름철이면 아이들은 이 바위에 올라 제주 넘기를 하면서 물에 떨어지곤 하였다.

12봉산부터 바다까지나 바로 저 유명한 명사 십리 줄기요, 해당화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숨쉬고 있는 곳이다.

해당화는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여러번의 옷을 갈아입기 때문에 사시사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맛을 전해주어 항상 기쁜 마음을 갖게하여 준다.

마을 서편으로는 남천강이 한줄기는 검블랑부터 신고산 용지원을 통해 안변평야를 거쳐 흘러들었고 또 한줄기는 서곡에서 춘악리를 거쳐 보매기 다리밑을 흘러 우리고향 용평리 마을 앞에서 강 하류인 성북리를 통해 동해와 마주친다.

마을 북쪽으로는 마을 출입구가 두 곳이 있는데 웃동네 아랫동네로 나누어져 있다. 쌓아 이어놓고 여기에 오리나무랑 소나랑 마루나루 등으로 숲이 우거지게 하여 방풍은 물론 숲벽이 되어 마을 밖에서 마을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게 하였다.

동네 집집마다 많은 농토를 소유한 탓으로 사람들은 주로 농삿일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원산시와 덕원군 내에서는 가장 크고 가장 부촌으로 알려져 있었고 인심 또한 부촌답게 후덕한 곳이어서 인근 동네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이 마을이 생긴지 몇백년이 지났으나 한번도 도둑을 맞았거나 흉악범이 발생하였다거나 누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갔다던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본 적 조차 없는 착한 사람들만이 살았던 마을이기고 했다.또한 누가 꼭 이 마을 지도자라고 나선 사람은 없었지만 이 마을에서 몇 십대를 살아 온 토박이 문중인 장씨, 한씨, 김씨, 엄씨, 신씨, 오씨 등의 원로 몇분하고 구장 1명이 임원이 되었고 이들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좌수가 되어 회의를 진행하여 마을 일을 결정 고시하면 모든 마을 주민들은 그대로 말없이 따라 시행하는 협조심 강한 마을이기도 했다.

마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남천강은 이 마을 사람들의 좋은 휴식처요, 또한 많은 추억들을 간직케 하는 강이다. 강 넓이는 제방뚝에서부터 제방뚝까지 약 1Km나 되는데 어찌나 강물이 맑은지 2~3m 되는 수심속을 물 위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바닥 모래속에 숨어서 꿈틀거리는(제치조개)랑 물속에서 노니는 망둥이하며 모래무치하며, 붕어 등이 보일 정도이다.

이 강에서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조개가 생기는지 둥글넓적한 철태에 그물을 부쳐 마치 잠자리채 엎어놓은 것 같은 소위 기가이(일본어로 기계라는 뜻)라는 간단한 소도구로 한시간여 동안 작업하면 두어 말들이 소쿠리에 조개를 가득 채울 수가 있었으며 이 것을 큰 솥에 넣고 적당히 삶은 다음 알맹이만 빼서 무쳐 먹든지 국을 끓여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일품이어서 셋이 먹다가 넷이 초상이 나도 모를 지경일 께다.

그런가 하면 갯벌(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의 지명)의 갈대숲이 우거진 샛강에서는 갈대를 양쪽으로 꺾어놓고 숭어 낚시하던 일은 이 마을에 살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일 께다.

숭어 큰 놈은 1m가 넘으며, 작은 놈은 15cm가량 된다. 숭어 새끼를 가리켜 <고투머리>라 했고 성어는 보통 숭어라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땀흘려 일하며 이 마을에 태어나 삶을 영위함을 으뜸으로 생각하던 우리 선조들은 여기에 뼈를 묻혔고, 그들의 후손들도 아무 욕심없이 생의 행복만을 다지며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평온하고 근면하며 양순한 사람들만 모여 살았던 부자 마을 용평리에도 일본제국주의가 망하고 8.15해방은 예외없이 찾아들었다.

그 동안 실향 50년!! 참으로 갖가지 일들이 많았던 세월이었다. 이러한 세월 속에서도 항상 용평리 향우회를 발족 운영해야 한다고 1세 회원 모두가 한결같이 갈망하면서도 너무나 살아가는데 바빳고 생활하는데 여유롭지 못하여 다 함께 모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않았던 탓으로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 실향 1세들이 일제히 일어나 여기에 모여 용평리 향우회를 조직 운영코저 하며 차세대들은 차세대 나름대로 굳건한 친목과 협조와 화해로서 본회의 영원한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후세들에게도 뿌리인 고향을 일깨워 더욱 더 후세들간의 돈독한 신애로서 무궁한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길 기원합니다.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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